까사 리빙 2020년 9월 호 월드 하우징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아띠끄 파리는 아름다운 빈티지 오브제와 조명, 가구를 수집 판매하며, 한국의 대표 인테리어 잡지 까사 리빙 ‘월드 리빙’섹션을 통해 유럽의 아름다운 집을 알리는 글도 기고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코발토 아트 디렉터 가브리엘 에스카메스의
지중해 건축을 그려낸 한 편의 수묵화같은 집
짙고 밝은 색채로 다소 원시적인 추상화를 구현했던 후안 미로의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 담은 듯, 햇빛이 종일 오래도록 머무는 가브리엘의 공간은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세라믹 오브제와 오래된 가구 그리고 햇살에 일렁이는 자연을 담은 식물들로 에너지가 넘친다. 질감을 그대로 노출시킨 흰 회벽과 짙은 고동색으로 단정하게 통일된 공간은 마치 소승이 머물다 간 자리처럼 정갈하고 은은하다.
소요와 고요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공장 지대 포블로누(Poblenou) 지역은1926년에 건축된 아르데코 양식 건물인 카사 안토니아 세라와 재개발된 신재생 건축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뉴트로 물살을 타고 이미 많은 빌딩들이 들어섰음에도 개발과 증축이 끊이지 않는 바로 이 곳에 코발토 스튜디오(Cobalto Studio)의 수장 가브리엘 에스카메스 (Gabriel Escamez)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는 2차대전 종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주변 환경과 1970년대부터 섬유 창고 쓰이던 160m2 면적의 독창적인 공간에 마음을 빼앗겨 공간을 매입했다. 그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내력벽을 중심으로 이 분할 된 벽을 허물고 널찍한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빈 캔버스라는 점이 좋았어요. 이 곳은 저의 집이며 동시에 코발토 스튜디오를 중심 철학이 집합된 공간이어야 하기에 설계와 소재 연구에만 9개월이라는꽤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리모델링을 3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는데 남다른 안목으로 고른 가구나 무심한 듯 놓여진 오브제의 각도만 보아도 그가 머릿속으로 여러 번 그려 낸 크로키 덕분이라는 것을 어렴풋 짐작해 볼 수 있다. 까다롭게 설계하여 탄생한 공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길이 머무는 공간마다 조화로워 360° 입체적인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지중해의 푸르름을 담은 코발트
클로에, 돌체앤 가바나 등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굴지의 브랜드의 아트 디렉션 및 세트 디자인을 담당하던 가브리엘은2016년 서른살이 되던 해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코발토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코발토라는 이름은 지중해 건축과 미적 세계관의 담은 것으로 호안 미로나 이브 클라인의 블루와도 비견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의미가 깊다 . 뤽 배송 영화 그랑 블루(Le Grand Bleu)에서 잠수부 자크 마욜이 깊이를 알 수 없어도 몸을 던저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바다로 묘사한 지중해는 가브리엘에게도 마찬가지로 한없이 넓고 깊은 존재.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는 오랜 시간 자연이 품어 형성된 원시적인 아치형 공간과 코발트 색 문을 볼 수 있어요. 1940년대 합리주의적 사조에 영향을 받아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실내 건축을 추구하지만 프로젝트마다 늘 약간의 광끼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죠. 언제나 두드려보고 싶은 그 푸른색 문처럼 말예요.’ 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천부적인 상상력으로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전통 공예품을 이용한 실내 장식에 관심을 갖고 현지 세라미스트와 협업하여 작품을 직접 프로모션 하는 등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 바로 가구와 오브제들를 구입하는 것이에요. 지금 이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금욕의 신 디오게네스처럼 소박하고 검소하려고 마음먹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매 순간 느끼죠. (웃음)’ 가브리엘에게 코발트 블루란 어쩌면 지중해권 문화의 따뜻한 전통을 지켜내면서 소박하고 진정한 건축으로 소통하고 싶은 그의 바람을 담아낸 일종의 선언문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