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 리빙 2020년 9월 호 월드 하우징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아띠끄 파리는 아름다운 빈티지 오브제와 조명, 가구를 수집 판매하며, 한국의 대표 인테리어 잡지 까사 리빙 ‘월드 리빙’섹션을 통해 유럽의 아름다운 집을 알리는 글도 기고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코발토 아트 디렉터 가브리엘 에스카메스의

지중해 건축을 그려낸 한 편의 수묵화같은 집

짙고 밝은 색채로 다소 원시적인 추상화를 구현했던 후안 미로의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 담은 듯, 햇빛이 종일 오래도록 머무는 가브리엘의 공간은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세라믹 오브제와 오래된 가구 그리고 햇살에 일렁이는 자연을 담은 식물들로 에너지가 넘친다. 질감을 그대로 노출시킨 흰 회벽과 짙은 고동색으로 단정하게 통일된 공간은 마치 소승이 머물다 간 자리처럼 정갈하고 은은하다.

소요와 고요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공장 지대 포블로누(Poblenou) 지역은1926년에 건축된 아르데코 양식 건물인 카사 안토니아 세라와 재개발된 신재생 건축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뉴트로 물살을 타고 이미 많은 빌딩들이 들어섰음에도 개발과 증축이 끊이지 않는 바로 이 곳에 코발토 스튜디오(Cobalto Studio)의 수장 가브리엘 에스카메스 (Gabriel Escamez)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는 2차대전 종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주변 환경과 1970년대부터 섬유 창고 쓰이던 160m2 면적의 독창적인 공간에 마음을 빼앗겨 공간을 매입했다. 그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내력벽을 중심으로 이 분할 된 벽을 허물고 널찍한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빈 캔버스라는 점이 좋았어요. 이 곳은 저의 집이며 동시에 코발토 스튜디오를 중심 철학이 집합된 공간이어야 하기에 설계와 소재 연구에만 9개월이라는꽤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리모델링을 3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는데 남다른 안목으로 고른 가구나 무심한 듯 놓여진 오브제의 각도만 보아도 그가 머릿속으로 여러 번 그려 낸 크로키 덕분이라는 것을 어렴풋 짐작해 볼 수 있다. 까다롭게 설계하여 탄생한 공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눈길이 머무는 공간마다 조화로워 360° 입체적인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지중해의 푸르름을 담은 코발트

클로에, 돌체앤 가바나 등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굴지의 브랜드의 아트 디렉션 및 세트 디자인을 담당하던 가브리엘은2016년 서른살이 되던 해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코발토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코발토라는 이름은 지중해 건축과 미적 세계관의 담은 것으로 호안 미로나 이브 클라인의 블루와도 비견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의미가 깊다 . 뤽 배송 영화 그랑 블루(Le Grand Bleu)에서 잠수부 자크 마욜이 깊이를 알 수 없어도 몸을 던저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바다로 묘사한 지중해는 가브리엘에게도 마찬가지로 한없이 넓고 깊은 존재.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는 오랜 시간 자연이 품어 형성된 원시적인 아치형 공간과 코발트 색 문을 볼 수 있어요. 1940년대 합리주의적 사조에 영향을 받아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실내 건축을 추구하지만 프로젝트마다 늘 약간의 광끼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죠. 언제나 두드려보고 싶은 그 푸른색 문처럼 말예요.’ 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천부적인 상상력으로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전통 공예품을 이용한 실내 장식에 관심을 갖고 현지 세라미스트와 협업하여 작품을 직접 프로모션 하는 등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 바로 가구와 오브제들를 구입하는 것이에요. 지금 이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금욕의 신 디오게네스처럼 소박하고 검소하려고 마음먹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매 순간 느끼죠. (웃음)’ 가브리엘에게 코발트 블루란 어쩌면 지중해권 문화의 따뜻한 전통을 지켜내면서 소박하고 진정한 건축으로 소통하고 싶은 그의 바람을 담아낸 일종의 선언문 일지도.

 

생각해보면 물건은 인간보다 오래 산다. 살면서 인간의 별의 꼴을 보았을 것이다.  길게 늘어뜨려진 그들의 삶의 궤적을 있는 방도는 없지만 분명 없이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버려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물건이 닳아 없어지기까지 인간은 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이렇게 지구를 포화 상태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버려지지 않는 삶도 분명 존재한다. 대대손손 전해 내려 귀중한 물건들은 물질적 가치를 떠나 이미 귀중하고 소중한 티가 난다.  할아버지가 엄마 결혼 선물로 물려주셨다는 자개장은 눈에 봐도 사람 손을 윤기가 나고, 할머니가 장작불을 때서 밥을 짓던 솥은 이미 십년도 되었다는데 것보다도 반들반들하다.

이렇듯 묻은 오래된 것에는 사연이 있기에 좋다. 아주 매끄럽고 완벽한 것은 매력이 없다. 깨지고 금이 것들은 역사를 담고 있기에 시간이고 사연이겠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금이 벽에 스미는 늦은 저녁의 석양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까사 리빙 2020년 8월 호 커버 스토리 월드 하우징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알프스의 초록을 담은 집’

뜨겁게 내리쬐는 토스카나 태양을 등지고 커다란 대리석 문을 열면 기대하지도 못한 건물과 정원이 이루는 황홀한 장관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된다. 지오 폰티가 1940년대 프랑스 국경 근처 보르디게라 (Bordighera) 해변가에 지었다는 다소 파격적이고 미니멀 한 빌라를 푸른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청록색의 베란다 바닥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유리창 대신 달았다는 피콕 그린의 벨벳 커튼 덕분에 쨍한 오후에도 이 그늘에는 간간히 소슬한 바람이 분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해안 도시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는 1920년부터 부호들의 휴양지로 각광받던 곳으로 피아트 (Fiat)의 창립자 아그넬리 가문은 물론 유명 영화 배우들의 별장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 작렬하는 토스카나 태양 아래 부드럽게 발을 간지럽히는 고운 모래 사장, 티레니안 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 이를 등지고 뒤돌아보면 한 눈에 담기는 알프스 아푼 산맥까지. 이 작은 마을이 제트 세터들의 휴양지가 된 데는 이처럼 숨겨진 이유가 있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클레식카 랠리의 출발지가 되기도 하는 이 해변가 마을에 알레산드로와 그의 가족의 여름 별장은 숨겨진 에메랄드처럼 조용히 반짝이고 있다.

지친 삶의 휴식처

명품 브랜드에 최고급 이탈리아 가죽을 납품하는 회사의 보나우도 (Bonaudo)의 최고 경영자로서 알레산드로 일리판디(Alessandro Ilipandi)야말로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비행기를 타고 시간을 앞서 나가는 비지니스맨이다. 그러나 3월 이탈리아 락다운(Lockdown)이 시작되기 며칠 전 그는 가족과 함께 밀라노 집을 떠나 이 별장으로 왔다. 어지럽고 모든 것이 불투명한 시국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곳은 밀라노의 아파트가 아닌 자연을 품고 있는 이 별장이라는 것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 ‘알프스의 초록’을 뜻하는 베르데 알피 (Verde Alpi) 대리석과 메탈 구조의 디테일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이 빌라는 무겁고 육중하다는 인상 대신 토스카나 빛을 담고 바람 타, 곡선을 그리는 푸른 치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잘 정돈된 정원 한 켠에는 목련이 꽃망울을 틔우고 성인 키만한 열대 식물들이 푸른 대리석 건물을 감싸 안은 모습은 정원이 집이 되고 집이 정원이 되는 완벽한 물아일체의 경험을 가족에게 선사하기 충분했다.

​루부탱이나 입생로랑과 같은 명품 브랜드 납품하는 고급 가죽 회사의 최고 경영자인 그는 4년 전 가족 별장 용도로 이 빌라와 주변 부지를 매입했다. 1960년대 전형적인 토스카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빌라였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크고 넓은 정원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자연과 휴식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을 환경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의 두 아들에게도 분명 여름 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될 터. 그는 이내 절친한 친구이자 밀라노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가구, 조명 디자이너인 빈첸조 데 코티스 (Vincenzo de Cotiis)를 떠올렸다. ‘그는 이미 밀라노 집 리모델링을 하며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해석하여 아름답게 창조해주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에게 무한한 신뢰가 있었어요. 1930년대 풍의 미니멀 스타일 빌라가 좋겠다고 이야기하니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이 에메랄드 빛 대리석 빌라를 제안해왔습니다.’ 그의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었던 알레산드로는 이내 건축부터 실내 디자인, 가구까지 모든 것을 빈첸조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 더 많은 이야기는 까사 리빙 8월호에 실려있습니다.

 

까사 리빙 2020년 3월호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라 비랑 로즈 (La vie en rose), 핑크로 물들인 아르데코 하우스

자주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웠다던 프랑스 낭만주의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 (George Sand)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그 앞에서는 한 없이 나긋한 여자가 되곤 했다. 디자이너 바네사 코키아로의 핑크색 공간은 그녀처럼 여성스럽되 쉬이 바스라지지 않는 단단한 조약돌처럼 아름답고 깊은 공간이었다.

햇빛이 닿는 순간 경이로운 무지개를 펼쳐 보이는 유리 조각은 사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을 데가 많다. 오히려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장식 없이 오로지, 조명과 질감에 집중한 이 공간은 프리즘처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햇살 뿐만 아니라 조명의 질감을 담아내며 디자이너인 바네사의 핑크 페미니즘의 팔레트를 펼쳐 보인다.

 

봉숭아 물들인 공간

어린 소녀의 불그스름한 복숭아 빛 볼을 떠오르게 하는 핑크색 벽과 페인트와 석고를 걷어 낸 후 별다른 마감도 하지 않은 투박한 무채색의 벽이 어우러진 디자이너 바네사 코키아로의 집은 마치 리허설 없이 합이 맞는 재즈 앙상블의 즉흥 연주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분홍색 벽과 모서리를 둥글린 소파나 커피 테이블 때문에 자칫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공간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바네사에게 페인트를 걷어낸 벽을 마감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은 절친한 친구이자 건축가인 디에고 델가도 엘리아스 (Diego Delgado Elias) 였다. 그는 페루 출신으로 미국 마이에미 아르키텍토니카 (Arquitectonica) 에이전시를 거쳐 파리에 정착, 엄격한 파리 시 고건물 관련 건축 규정 및 제한을 준수하면서도 바네사의 세심한 요구를 존중해야 하는 꽤나 복잡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내력벽 구조로 이뤄진 바네사의 공간은 구조적으로 많은 변화를 꾀하기 어려웠기에 우선 거실을 둘로 나누던 중앙 벽을 허물어 큰 거실을 만들고 화려한 천장 몰딩을 돋보이는 화이트 마감으로 검박한 벽과 대조를 이루도록 했다. 출입구에서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그녀의 침실, 욕실, 사무실이 차례로 마련하였고, 오른 편에는 주방과 화장실을 두었다. 주방은 요리를 좋아하는 바네사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공간으로 창이 안뜰로 향해 있어 조도가 낮은 것을 역으로 활용, 짙은 톤의 핑크색과 붉은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조명을 달아 어둡지만 따뜻한 공간으로 연출하였다.

 

 

까사 리빙 (Casa Living) 2019년 8월 호,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더 코너 (The Corner) 에마뉴엘 드 베이제 (Emmanuel de Bayser)

파리 17구 몽소 공원 근처 한적한 길가,  아르 데코로 미술로 잘 알려진 니심 드 카몬드 미술관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오스마니안 건물 1층에는  베를린 유명 컨셉 스토어 더 코너(The Corner)의 공동 창립자인 에마뉴엘 드 베이제(Emmanuel de Bayser)의 보금자리가 있다. 베를린에 3개의 컨셉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베를린과 파리라는 매력적인 두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 3개월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컬렉션이 쏟아지는 패션 분야에서 벌써15년째 일하고있다. 그러나 사적인 공간만큼은 오히려 명상에 잠길 수 있도록 힘을 빼고 은은하고 심플하게 꾸몄다.  특히 파리 아파트는 패션 위크 동안 끊임없는 이어지는 브랜드 미팅과 바잉 후에 반려견 아키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표현된 그의 집은 다른 시기 혹은 재질의 오브제가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인상을 주는데 캘리포니아의 푸르름을 떠올리게 하는 아니쉬 카푸르(Anish Kapoor) 반구와  세르주 로쉬(Serge Roche)의 1930년대 석고 조명이 대표적이다. 그의 공간은 이처럼 현대 미술 작품부터 20세기 프랑스 산업디자인을 이끈 디자이너의 가구들로 기분 좋은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

프랑스의 야수파 작가 조르주 데발리에 (George Desvallières)인 증손주인 그는 1 8, 19세기 예술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예술가였던 할아버지와 갤러리스트였던 할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예술과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독립해서 그만의 공간을 꾸밀 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케아 (Ikea) 가구를 샀다.  현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찰스 레이 임스 (Charles Ray Eames)나 조지 넬슨 (George Nelson)과 같은 6-70년대 미국 디자이너 디자인을 찾기 시작했다. ‘25년전 이베이가 생소하던 시절 갖고 싶은 디자이너의 가구가 생기면 경매도 마다하지 않던 탓에 밤을 많이 샜어요. (웃음) 그렇게 처음 이베이를 통해 구입한 가구가 플로란스 크놀 (Florence Knoll)의 아이코닉한 소파와 의자인데, 이 소파는 여전히 애장하는 가구 중 하나로 파리와 베를린 아파트를 거쳐 지금은 베를린 매장에 있습니다.’  넘치도록 화려하게 표현되는 18세기 로코코 장식이나 색이 강항 야수파 미술과 함께 자라 온 그가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몰두하게 된 것도 놀라운일은 아니었다.  ‘색이나 장식이 많은 공간을 들어서면 곧 질려 버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에 끌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니멀리즘으로 꾸며진 저의 집이 안락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프랑스건축가에 눈을 돌렸고 장 프루베 (Jean Prouvé)의 스탠더 SP 시리즈 를 시작으로,  샬롯 페리엉 (Charlotte Perriand), 피에를잔느레 (Pierre Jeanneret), 세르주 무이 (Serge Mouille)의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따뜻한 공간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과거에 거주하던 건물에 매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천장이 높고, 복도를 중심으로 정확히 양분되는 이아파트의 구조가 마음에 들어 보자마자 바로 매입했다. 입구를 들어서면 프랑스 건축가 조셉 디란드 (Joseph Dirand)의 대리석 탁자가 있는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 모두 거실 및 응접실을 두었다. 한 거실의 창은 길가로 다른 창은 중정으로나있어 하루 종일 해가 쏟아지고 사방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화장실과 주방을 제외하고는 큰 리노베이션도 않고 조금손상되었던 벽을 다시 정비하고, 서재를 꾸미고 벽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아이보리색 천으로 마감하는정도의 매무새만 고쳤다. 피에르 잔느레, 장 로와에 (Jean Royère) 등 20세기 프랑스 디자이너의 가구들로 거실을 완성한 그는 가구에 조형미를 살리고 공간미를 더해줄 오브제로 세라믹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매일 곁에서 즐길 수 없는 오브제는 원하지 않아요. 그렇게 조르주 주브 (Georges Jouve)의 세라믹의 불완전한 조형미에 마음을 빼앗겼죠. 그 불완전함 덕분에 어떻게 어느시선에서 보느냐, 혹은 그 당시 햇살이 어떠하냐에 따라 모양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그래서 수집한 가구나 알렉산더 놀(Alexandre Noll)의 조각과 매치해보고 완벽한 자리를 찾아보려 노력해요.’ 모든 오브제가 어느 곳에 어떻게 놓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청소도 자신이 직접한다. ‘안타깝게도 조카들을 아직 너무 어려서 이사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이 집에 초대하지 못하고 있어요. 조금 더 크면 주브의 세라믹은 몰라도 라란(Francois-Xavier Lalanne) 의 양은 갖고 놀게 하려고요. (웃음)’ 이 집은 그의 컨셉 스토어 더 코너 쇼윈도만큼 볼거리가 넘쳤다.

 

 

까사 리빙 (Casa Living) 2019년 8월 호,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피에타 상을 보며 인간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것 같다는 대중의 찬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실수를 한 것은 비단 미켈란젤로 뿐이 아니다. 유럽 건축물 파사드에 종종 새겨진 건축가의 이름은 그들의 입신양명의 야먕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베르토 바시오키는 자신은 남기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가 디자인한 공간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칭찬이다.’ 피렌체 근처 작은 도시 아레조에 자리한 그의 집은 낮의 햇살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을 감상할 수 있는 나긋한 공간이었다.

유난히 언덕과 산이 많은 토스카나 지방의 남서부 중심 도시인 아레조 (Arezzo), 13세기에 지어진 로베르토의 저택은 구시가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집 주소를 말하자 택시 기사는 단번에 무슨 일로 프라다 건축가의 집에 가느냐 되묻는다. 건물 외부로 난 묵직한 나무 문을 밀면 보이는 복도 끝 정면에는 곧장 안뜰로 향하는 유리문이 있고, 왼편 계단을 오르면 그의 집안으로 연결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동화에 등장할 법한 빨간 모자의 난쟁이 모형 여럿이 거친 질감의 건물 벽과 어우러지며 묘하게 즐거운 인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공간이 무대가 될 때 

아레조 구시가지에서 자라며 고건축물과 사람, 자연이 공존하는 것을 관찰하며 성장한 로베르토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공간을 존중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공간은 그 자체로 성격과 영혼이 있어요.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레퍼런스들이 가득하지요.’

그러니 그가 7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13세기 팔라초를 매입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을 일이었다. 그는 과감한 리노베이션보다 복원과 보존 및 전기 설비 작업에 매진했고 햇빛을 들이기 위해 중정으로 난 모든 창에 통유리를 달았다. 천장을 뒤덮던 하얀색 페인트를 걷어 내고 나니 18세기에 완성된 벽화가 드러났다. 2층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던 건물 바닥을 코시오페스토 (Cocciopesto) 라는 이탈리아 전통 방식으로 마감했는데 이는 베니스 건축에 주로 사용되는 방식으로 으깬 테라코타와 회반죽, 기름을 섞어 만든 것으로 위생적인데다 마르면 짙은 붉은 빛을 띄게 된다. 이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이 지닌 공간의 기운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다 뜯어 고치려면 무엇하러 1300년에 지어진 집에 살겠습니까. ’ 라며 되묻는 그는 건물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과감한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노출 천장과 프레스코, 코시오페이스토 바닥 장식과 회반죽 벽의 따스한 질감처럼 오래된 건물이 가진 기운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땅의 기운을 살펴 공간을 해석하는 것이 풍수지리 사상과 닮았다는 말에 로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공간을 보기도 전에 이 곳을 어떻게 만들어겠다 라는 의도로 디자인하면 파괴적이 되어버려요. 나는 공간에 들어서면 그가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자 합니다’

부드럽게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그의 집에 들어오는 순간 연극의 막이 오른다. 벽장을 열면 복도와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서재의 벽장을 열면 불이 켜지고 침대 나타난다. 모든 공간은 새로운 색감과 질감으로 구현되어 마치 한 막이 내릴 때 마다 손뼉을 치고 싶을 정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이 마치 완벽한 미장센(mise en scène)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리도 극적으로 연출 되었을까. 그는 공간이 그 자체로 감정의 판타지를 일으킬 수 정도로 한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아무 장식이 없는 벽이고 공간일지라도 시간이 흐름이 스며들어 건물의 피부가 됩니다. 이것을 바라보면 꿈을 꾸게 되요. 반들거리는 하얀 벽은 영감을 주거나 자극을 주지 않잖아요.’ 그의 공간을 들여다본다면 아마도 그가 색으로 공간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지만 그는 색보다 재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종 벨벳을 많이 사용하는데 벨벳은 햇빛을 흡수하고 반사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질감을 표현해냅니다. 나는 빛이 재료에 닿았을 때 그 드라마틱한 표현력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색은 그 다음이지요.’

이러한 그의 의도는 다양한 공간과 디자인에서 나타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베네치아산 거울로 만들어진 욕실이나, 온통 옥 색 대리석으로 표현된 화장실, 회벽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거실처럼 말이다. 이 집을 그의 세계의 연장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 집은 바로 나예요. 소소한 것에도 퀄리티를 찾고자 하는 내 평생의 노력이 어떤 프로젝트 목적이 아닌 그 본연의 상태로 구현된 것들의 합(合)라 할 수 있습니다.’

 

 

 

빠리 삐갈 (Pigalle) 지구 18세기에 지어진 오스마니안 건물 안 길게 뻗은 복도 끝, 에그쉘 그린 색 문을 열면 장 크리스토프 오마스의 아파트가 나타난다. 존 갈리아노, 셀린느와 같은 굵직 굵직한 브랜드의 비주얼 디렉팅을 도맡았던 싱굴라 (Singular)의 대표인 그의 집을 들어서면 식물이 주인인 초록빛 거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느 공간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그리고 빈티지를 사랑하는 그가 파리 플리마켓에서 발견한 매력적이고 다양한 오브제들과 조명으로 이뤄진 보석같은 공간이다. 

공간 이야기

아파트에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주방은 디자인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새로 했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주방 벽을 모두 터서 오픈 키친으로 만들었다. 불완전한 듯 보이는 두 개의 아치형 구조는 주방과 다른 공간을 상징적으로 분리하게 위해 그가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주방이 완성된 후에 덧붙였는데 이는 적확한 의미에서의 공간을 분리하는 파티션이라기보다 상징적 의미로서의 분리에 가깝도록 만든 것이다. 

주방은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 그대로인 시멘트와 바니시를 바르지 않은 붙박이 장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오래된 수전을 놓고, 이 공간을 밝히는 유일한 벽 조명은 벨기에 브뤼셀 플리 마켓에서 구매한 빈티지 조명이다. 어떤 특별한 아티스트의 조명은 아니지만 공간의 색감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공간의 입체적 조형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파리 쌍투앙 벼룩 시장에서 구매한 오래된 디스코텍 조명은 바테이블 위에 달았는데, 낡고 해진 느낌이 세월을 흐름을 느끼게 해줘서 오히려 구매했는데 그의 애장품 중 하나다.

주방과 출입문에서 연결된 널찍한 거실은 오후 햇살이 쏟아지도록 벽을 모두 트고 큰 유리문을 달고 자갈을 깔아 온실처럼 꾸몄다. 식물이 사는 공간에 사람이 손님이 된 것만 같은 미묘한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가 특별히 신경 써서 꾸민 공간이다.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를 가득 채운 대리석 오브제들 역시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모은 것들로, 그 자체로 쇼윈도우 디스플레이 같기도 하고 푸른 거울 덕분에 마치 현대미술 작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조 콜롬보 (Joe Colombo)의 아이코닉한 빈티지 화이트 4801시리즈 의자는 그의 거실을 한층 더 멋스럽게 해준다.  

거실에서 벽난로를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멋들어지게 있는 서재 겸 손님방, 그리고 그의 방이 있다. 사실 거실과 지금의 서재 사이에는 작은 문과 파티션이 있었다. 그는 이 벽을 모두 터서 공간을 넓게 보이도록 했다. 그 때문일까 실로 이 곳에는 분리된 공간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방과 맞은편 손님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은 다 열려 있고 유려하게 연결되도록 디자인했다.

 

까사 리빙 (Casa Living) 2019년 8월 호,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오늘은 재즈처럼, 내일은 그림처럼 살바토리 하우스

밀라노의 솔페리노 11번가. 가브리엘레 살바토리의 아파트에는 칸딘스키와 모란디의 흔적 그리고 재즈 선율이 은은하게 스며 있다. 자연석 본연의 색과 질감을 담아내며, 여기에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 도형을 더해 완성한 133m2의 공간은 따뜻한 추상화 한 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 음악이 머물다 간 자리

쳇 베이커가 숨 쉬듯 쏟아내는 트럼펫 선율이 남아 있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종일 쏟아지는 7월 햇살이 물결무늬 테라초(Terrazo) 바닥에 쏟아지면 풍요로운 색을 품은 공간이 속살을 드러내는 이곳은 대리석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리(Salvatori)최고 경영자 가브리엘레 살바토리의 아파트다.  밀라노 브레다 디자인 지구 솔페리노 11번가 보피(Boffi), 데파도바(Depadova), 디모레(Dimore)갤러리와 같은 굵직 굵직한 브랜드 쇼룸이 모여있는 19세기 팔라초중정에는 살바토리의 쇼룸이,맞은편 건물 4층에는 가브리엘레의 아파트가 있다.

예술가 칸딘스키의 추상화에 영감을 얻어 완성한 이곳은 푸른 대리석을 닮은 거실의 나무 천장, 마일스데이비스의 재즈곡 « 블루 인 그린 »의 색감을 구현한 가브리엘레의 침실, 파스텔 로즈와 청회색으로 마감한 손님 방까지 면면이 경쾌한 색조 팔레트를 갖고 있다. 이는 모두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파일 언더팝 (File under pop)의 창립자이자 재즈 싱어인 조세핀아크바마(JosephineAkvama) 가 각 공간에 어울리는 재즈곡을 떠올리며 완성한 것이다. 가브리엘레역시 재즈 음악 애호가이며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즐기는지라 이곳에서는 종종 친구들과 즉흥 재즈 콘서트가 열린다.

2년 전 이웃의 초대로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단번에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100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테라초바닥 장식이었다. 20세기 초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과 따뜻한 색감,모티프에 이내 마음을 빼앗겼다. 밀라노에 올 때마다 머물 수 있는 거처이자살바토리디자인을 ‘집’이라는따뜻한 컨텍스트에서 표현해 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와 장소라는 생각 들었지만 이미 누군가에게 임대가 된 것을 아쉬워할 수 밖에 없었다.

“ 그 뒤로 열렬한 짝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부인에게 자주 꽃을 보냈어요 (웃음). 그런 저의 정성이 통했는지 2년 뒤에 이 곳에 거주하던 이들이 떠나고 새 임차인을 찾던 건물주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는 마침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앞둔 2017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와 함께 브랜드의 쇼룸을 디자인해왔던 엘리사오시노(Elisa Ossino)의 진두지휘로 지체없이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 이후 내용은 까사 리빙 2019년 4월 호 잡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까사 리빙 2019년 4월 호 커버,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깊고 고요하게 비우기의 미학

19세기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이탈리아 저택을 리모델링하는 일은 일종의 비워냄이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벗겨내는 과정이었다. 부족함에 오히려 본질이 담겨 있으며,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낡고 오래된 것에 고유한 정취가 깃든다는 와비사비 (Wabi-Sabi) 즉,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저택을 찾았다.

비어있음에도 가득 차 있다. 그 유명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짜리 침묵의 음악을 공간으로 구현한다면 이럴까. 새의 지저귐과 광장의 소음, 수영장 정수기 모터의 산발적인 진동 소리조차 음악이 되는 이곳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풀리아에 자리한 대저택 “팔라초 다니엘라(Palazzo Daniela)”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다니엘레 가문의 5대 후손이자 현대미술 비영리 재단인 ‘카포 다르테 (Capo d’arte)’를 10년째 운영 중인 프란체스코 페트루치(Francesco Petrucci)의 어릴 적 기억 속 팔라초 다니엘레는 두꺼운 벨벳 커튼과 카펫,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와 보르도색 벽지, 로코코 스타일의 몰딩과 오브제로 가득한 곳이었다. 추억속에만 자리하던 저택이 새롭게 숨쉬 기 시작한 건 몇 해 전. 2016년 이모가 작고하면서 그에게 저택을 상속 했고 프란체스코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루도비카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을 모던하면서도 유기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에게 루도비카와 로베르토 팔롬바 부부는 빛나는 명성을 떼어 놓고서라도 따뜻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공간의 재배치와 그용도 변경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축가였기 때문.

“실제로 팔롬바 부부는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규정 되지 않은 ‘원석’ 같은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공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지극한 아름다움을 빚어낸 것이지요.”

그리고는 그에게는 거의 ‘치유의과정’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 높은 리모델링과 본질에 집중한 복원의 과정이었노라 고백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1년 지어진 고저택은 현대미술을 논하는 너른 장이자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 소속 아 티스트의 레지던스로, 때로는 이탈리아의 한적한 마을 풀리아를 찾는 손 님을 맞는 게스트 하우스로 재탄생했다.

 

이후 내용은 까사 리빙 2019년 4월 호 잡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까사 리빙 2019년 1월 호 커버, 글 한 효정, 사진 김민은

당신이 이 모던하면서도 미니멀한 하얀 벽의 포근한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지난 30년간 주인 없이 방치되었던 기름 방앗간이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450 m2공간 규모와 6m에 이르는 아치형 층고, 오래되어 색이 바랜 벽돌 기둥으로 어렴풋이나마 그 400년의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이곳은 밀라노 베이스 부부 건축가 루도비카와 로베르토 팔롬바의 풀리아(Puglia) 별장이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온통 새카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집은 우리에게 더는 못 참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빛을 원하고 있었던 거지요.’라며 루도비카는 회상한다.

도면을 만들고 시공을 마치는 데까지 다섯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450m2 실내 공간은 물론 안뜰과 테라스를 아우르는 300m2규모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짧은 기간이다. 모든 자재와 인력을1km 반경 이내에서 공수하는 이탈리아 전통 시공 방식인 ‘0km’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가진 흔적과 역사를 지켜내면서 주거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변화를 주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절실했던 빛을 들이기 위해 안뜰과 거실 사이를 가로막던 벽을 트고 유리문을 다니 따뜻한 지중해 햇살이 종일 쏟아졌다. 또한, 이탈리아 남부 전통 방식 그대로 실내는 물론 외부까지 회벽 마감하니 달리 많은 인공조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창문 하나도 밖으로 내지 않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3일 전에 만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심적 여유를 찾을 공간이 절실했어요. 일상에 지친 우리가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랬어요.’ (…)

이후 내용은 까사 리빙 2019년 1월 호 잡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INES, NON C’EST INÉKO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을 떠오르게 만드는 인테리어 덕분에 기억해두었던 곳이다. 만약 당신이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비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싶다면 꼭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르세이에즈 (Marseillaise, 프랑스 어로 마르세유에 사는 여인을 이르는 말) Inés의 카페다. Kenzo에서 일하며 알게 된 일본 친구들이 그녀를 Inéko라고 부르는데서 연유된 카페이름은 “어라, 일본 사람이 하는 카페인가” 하며 들어섰던 나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들어서면 둘로 분리된 공간 자체가 매력적이다. 아담하게 꾸며 놓은 입구에 놓여져 있는 테이블의 공간은 따가운 햇살이 생각나는 마르세이다. 여름에 그늘에 앉아 미풍을 맞으며 브런치를 해야지.

향기로운 커피향이 진동하는 카운터를 지나 따라가면 반으로 잘 깎아 놓은 미니멀한 우든 테이블과 빈티지 조명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보면 유리로 마감된 천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유리 천장 덕분에 비가 오는 날 타탁거리며 유리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기 참 고즈넉한 공간이 된다. 조금 지치고 피곤한 파리 삶에서 벗어나 찾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랄까.  어쩐지 모닥불이 피는 벽난로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주 훌륭한 커피와 빗소리와 그리고 빈티지 벽조명으로 완성된 적당한 조명으로 지금은 비오는 날 가야만 하는 카페 중 하나다.

당신이 비가 오는 날 이곳을 찾게된다면 어쩌면 나를 발견하게 될 수 도있다.

 

This future furniture has a past

 

사람은 가구와 더불어 산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골동품이 아니라도 예전 것들이다. 퇴계와 율곡 같은 분이 쓰던 유래 있는 문갑이 아니라도, 어느 조촐한 선비의 손때가 묻은 대나무로 짜서 옻칠한 문갑이다.

먹글씨를 아니 쓰더라도 예전 벼루와 연적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 세전지물, 우리네 살림에는 이런 것들이 드물다. 증조 할머니가 시집때 가지고 온 것, 이런 것이 없는 까닭은 가난한 탓도 있고 전란은 겪은 탓도 있고 한군데 뿌리를 박고 살지 못하는 탓도 있다.

그리고 오래된 물건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잘못에도 있다. 유서 깊은 화류장롱이나 귀목 받닫이를 고물상에 팔아 버리고 베니어로 만든 ‘단스’나 ‘캐비닛’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교체를 잘 하는 사람들이다.

서양 사람들은 오래된 가구나 그릇을 끔찍이 사랑하며 곧잘 남에게 자랑한다. 많은 설명이 따르기도 한다. 파이프 불에 탄 자국이 있는 마호가니 책상. 할아버지가 글래드스턴과 같이 유명했던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더 길어진다. 자동차 같은 것을 해마다 바꾸는 미국 가정에서도 ‘팔라’에는 할머니가 편물을 짜며 끄덕거리고 앉아있던  ‘로커’가 놓여있다. 흑단, 백단, 자단의 오래된 가구들. 이런 것들은 우리 생활에 안정감을 주며 유구한 생활을 상징한다.

사람은 가도 가구는 남아있다.

화려하여서가 맛이 아니다. 오래가고 정이 들면 된다. 쓸수록 길이 들고 길이 들어 윤이 나는 그런 그릇들이 그립다. 운봉칠기, 나주소반, 청도 운문산 올달솥,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두면 뚜껑에 밥물이 맺히는 안성맞춤 놋주발, 이런 것들조차 없는 집이 많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네 살림살이는 한낱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11월 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이 징그러운 시점에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르다.

프랑스에서 7년의 시간을 지내고 나면 한국어보다 불어가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초반에 가게를 하나 들어가려해도 미리 여러번 연습하고 들어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다. 타국에서 10년이 지나면 내 나라처럼 될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치워버리려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프랑스 라디오를 듣고, 프랑스 언어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픈 마음을 혹은 기뻐서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을 표현하는 하루 하루가 쌓여감에도 어떤 이는 한국말로 말하는 것 만 못하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나누고, 일상을 이야기하는 시간들 속에서 감정이 말을 앞서고, 이는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문제인 대통령보다 익숙하고, 파나마 페이퍼Panama Papers 스캔들에 이어진 파라다이스 페이퍼Paradise Papers 스캔들을 다룰 Cash Investigation이 무한도전보다 기다려진다. 실제로 예능에 나오는 이의 반도 누군지 모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컨텍스트를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씩 한국 사회의 실정과 정세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동화’가 절대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름과 물 처럼 섞이지 않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닮고 싶은 것만 닮기로 했다.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위라고 생각하는 프랑스 인들이지만 지하철과 버스가 파업하면 붉으락푸르락 화와 짜증을 내는 모순적인 모습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대놓고 내 권리를 외치는 모습이 맘에 안들어도 꾹꾹 참는 이들보다 낫다.

내가 왜 프랑스에 사는지 알것 같다고 지인이 말했다. 틀 처럼 짜여진 한국의 빡빡한 위계 질서와 모듈적인 삶에 나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방랑자처럼 훅 떠난 것 같다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 만큼의 권리와 인권을 가져야 하고, 노동자가 기업인만큼 대접 받아야하며, 돈 쓰는 소비자가 판매자보다 콧대높게 거만할 필요는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시내도 흉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

 

 

 

당신은 천재야, 스티그 !
C’est un génie, Stig!

너무 심플해서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이 있다.
스톤웨어의 장점을 살린 실용적인 디자인 때문에 자칫 최근의 디자인이라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스티그 린드베리의 다트Dart와 론도Rondo는 디자이너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즉 70년대 후반에 디자인 된 작품으로 4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왔다.

아래는 스티그의 다트 디자인에 관한 좋은 글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였던 스티그 린드베리stig lindberg (1916-1982)는 동화책의 삽화에서부터 텍스타일, 생활자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던 천재 디자이너였다. 그가 남겼던 베르소 versa등 일부 제품들은 그 인기 때문에 현재에도 리바이벌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스웨덴 현지에서도 그 인기는 대단한데, 아마도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 천재 디자이너가 세상에 남겨준 작품 중에는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dart라는 시리즈가 있다. 구스타프베리gustavsberg에서 1977년에 선보였던 스톤웨어 라인인데, 특유의 재질을 가진 크림 컬러의 바탕에 두께가 다른 블루와 블랙의 라인들을 손으로 정교하게 그려 넣은 제품이다. 학생식당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심플하다 못해 밋밋한 겉모습 때문에 국내 컬렉터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많지 않은 시리즈이지만 이 다트 시리즈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디자이너로서 그는 이 단순한 구조의 컵을 만들었는데, 사용성에 대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던 가를 엿볼 수 있다. 컵의 손잡이에 뚫린 동그란 원형의 구멍은 성인 남자의 검지 손가락도 한 마디 정도 거뜬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불편할 정도로 꽉 끼는 것은 아니라 다른 컵들보다 손가락을 잡아주는 정도가 강해 손에서 컵이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컵의 바닥 면에는 여섯 개의 돌기가 있다. 이 돌기들 덕분에 컵의 바닥은 테이블 등의 접촉면에서 2mm정도 떠 있게 되는데, 바닥의 물기 등으로 인해 컵이 테이블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디자이너의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감동적이라 할 수 있는 특징은 따로 있었다. 한 개의 컵만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비밀이다. 나 또한 몇 개의 같은 컵들을 치우다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컵의 아랫부분을 컵의 두께 정도만큼만 안쪽으로 밀어 넣어 열 개가 넘는 컵들도 수직으로 반듯하게 쌓아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컵의 아랫부분이 다른 컵의 윗부분 속으로 쏙 들어가는 구조이다. 게다가 그 두께가 어찌나 절묘한지 아무리 높이 쌓아도 빈 공간이 생겨 흔들거리는 일도 없거니와 컵의 면들이 서로 부딪쳐 그 면들이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할 일도 없다. 컵을 쌓아서 보관을 해야 하거나 혹은 여러 개의 컵들을 사용한 뒤 설거지를 위해 옮겨야 할 때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그의 나이 예순 하나 때 선보였던 제품이었다. 어쩌면 스티그 린드베리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예술성이 가장 잘 발휘되었던 나이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동안 수많은 제품들을 만들어오면서, 과연 자신이 만들어내는 제품들이 세상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혹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만큼은 충분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출처: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팩토리 ( Scandinavian Vintage Factory 블로그, http://blog.naver.com/louispoulsen/130138509270)

 

MORE THAN IKEA

북유럽의 국가들이 유난히 디자인에 강한 이유는 추운 날씨로 인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띠끄 일을 시작하면서 필자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그럴 때마다 “요거 요걸 어떻게 바꿀까” 요리조리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누구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공간을 가장 편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많은 이가 알다시피 스웨덴의 디자인의 집결체다. 즉 모든 디자인은 스웨덴의 디자이너의 손에서 완성되지만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 공정은 동유럽 국가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번엔 이케아의 하얗고 심플한 디자인이 나오기 전 구스타브스베리 (Gustavsberg), 로스트란드 (Rörstrand),  예블레(Gefle)나 핀란드의 아라비아 (Arabia) 등 심플하고 실용적이며 아름다운 디자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SWEDEN : GUSTAVSBERG

구스타브스베리는 1825년 벽돌을 제작하던 공정소에서 만들어졌다. 1830년대 말부터 단순한 모티프나 꽃장식을 기본으로 한 도자기가 만들다가 차차 영국에서 들여 온 기술 데칼코마니를 모방하면서 발전하였다. 구스타브스베리는 1917년 Kage가 수장이 되어 디자인을 담당하게 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1920-30년대를 모더니즘의 중심이 되어 아르데코의 실용주의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 아르데코의 두 흐름에 대한 이야기 ) 바로 이때가 북유럽의 디자이너들이 파리의 디자인 박람회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시기이다. Kage의 수제로 꼽히는 스티그 린드베리 (Stig Lindberg)는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49년 구스타브스베리의 아티스트 디렉터가 되어 스웨덴 디자인의 커다란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는 스웨덴 자두, 푸른 잎 등 자연의 소재를 여러 색감으로 기발하게 풀어낼 뿐 아니라, 기하학적이며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FINLAND: ARABIA

핀란드의 디자인은 실용적이면서도 색감이 아주 다양한데 이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1975부터 1981년까지 아라비아의 인기 디자이너 Ulla Procopé가 컨셉을 잡고, 디자인은 Inkeri Leivo가 하여 생산된 우투아 (Uhtua) 라인을 살펴보면 한눈에 반할 정도로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는 핀란드어로 호수를 뜻하는 말 우투아와 잘 어울린다. 정갈하게 떨어지는 전체적인 조형미는 물론이고 옅은 하늘색과 연분홍색 그리고 짙은 갈색의 선이 은은하게 조화를 이룬다. 현재는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찾기 어려운 노르딕 디자인의 빈티지 잔 중의 하나이다.

저 섬세하고 유러한 선 하나 하나에 마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여러번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이면 시간을 느리게 흐를것만 같다. 베르메르의 그림도 생각이 나는 것은 아마 색감과 빛 때문이리라.

 

 

 

 Une relation sérieuse ou bien un bon coup?

도자기, 예술 이야기 말고 오늘은 좀 수위를 올려서 삼십대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틴더 (Tinder) 해픈(Happn)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최근 한 2년간 프랑스 젊은이들의 연애관을 흔들고 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틴더를 통해 만난 여자 친구와 진지한 관계를 이어가는가 하면 또 한 친구는 급할 때(?) 하룻밤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기며 아듀 (Adieu)!를 외치기도 한다. 틴더와 해픈이 도대체 무었이냐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것은 마치 달랑 달랑 매달려 한 끝차이로 늘 빗나가는 인형 뽑기 기계같다.열번의 한번은 내맘에 드는 인형을 뽑을 수 있지만 대게 주머니 탈탈 털리기 일수다.

“오백원 천원…이만원!  이만원을 썼다고? 와 아-아-아”

틴더(Tinder)를 어떤 긱(Geek)이 만든 스타트 업 (Start-Up)회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실은 미국 유명 데이팅 사이트인 meeting.com에서 InterActive Corp라는 유명 자본 회사의 도움을 받고 시작한 회사이다. 화면에 프로필이 한개씩 나타나는데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Swift 별로다 싶음 왼쪽으로 Swift하면 되는 단순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상대와 매칭, 즉 둘다 마음에 들어요를 선택했다면 쪽지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섹스 어플리케이션이라는 비난을 사며 조금 잠잠해졌다가 최근에 다시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대의 데이팅의 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이 분명하다. 파리지앵 중 십만명이 해픈에 가입했다는 통계는 이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이 최근 사이 급속하게 프랑스 싱글족들의 생활권 내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픈(Happn)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어플리케이션으로 자기와 생활권이 비슷한 사람들과 매칭이 되는  것이 틴더와 다른점이다. 즉, 회사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거나 혹은 파리 어딘가 길거리에서 마주쳤다거나 혹은 지하철 같은 칸에 있다거나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 외의 시스템은 틴더와 같다.

Happn은 틴더와는 다르게 사실 우리가 한 번은 있었을 법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사실 한 번은 있지 않은가, 카페에서 바에서 혹은 어딘가서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멋지고 예쁜 누군가를 스치듯 보았고 용기가 없어서 혹은 상황이 어색하서 그냥 흘려보냈던 인연들 말이다.

 아래는 Happn의 광고인데 꽤 흥미롭다.

Girl: “What do I have to do so that you can come up and talk to me? Stare at you little more?..”
“네가 나한테 와서 말걸게 하려면 내가 도대체 뭘 해야되? 널 더 오래 쳐다봐야 하나? “
Boy: “Yeah why not!I think you can move your scarf little bit that I can see your face better, who knows? then I might have courage to come up and talk to you!”
“그래 그런거 좋다. 내가 볼 땐 그 스카프를 좀 만지작 거려도 좋을 것 같은데… 누가 알아? 그럼 내가 용기내서 너한테 가서 말걸지.”
Girl: Oh… it’s the scape, is it?
So if it wasn’t there, I could have heard your voice and you could have heard mine, what a shame!
오 그러니까 스카프 때문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스카프만 없었다면 나는 네 목소리를 듣고 너는 내 목소리를 둘을 수 있었겠네? 이렇게 안타까울수가!
Boy : Very funny! But why can you come up and talk to me?
재밌네, 그럼 왜 네가 나에게 와서 말 걸지 않는건데?

맞는 말이다. 실은 이 광고의 재미있는 점은 여성들에게 기다리지 말고 맘에 들면 먼저 움직여도 남성들은 좋아한다는 메세지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관련되서는 워낙 의견이 분분하니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내 친구 Louis (루이) 내 친구 Alice (알리스) 관심을 갖고 나에게 중매(?)비슷한 것을 은근히 부탁한적이 있었다. 알리스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내가 중간에서 루이 마음 다치지 않게 잘 마무리 했었다. ‘걔 요새 만나는 친구가 있대’라며 말이다. 그런데 2주가 지나고 그 친구에게서 대뜸 연락이 왔다.

“야 너 알리스가 누구 만나는 애 있는 거 확실해? 나 지금 개 프로필 틴더에서 봤는데?”

휴-우 (한숨)

 

BEST DUO, Süe & Mare

수 & 마-흐 (Süe & Mare)를 흘려 듣고 철이와 미애를 생각하셨는가. 아니면 무한도전의 박명수와 누군가가 만들었을 듀오 이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셨는가. 지난 번에 잠시 아르데코의 큰 두 흐름에 대해 소개했었는데 수와 마흐는 아르데코 장식예술을 이끈 장본인이자 실용주의적이고 차가운 장식예술에 반대하며 “프랑스 예술 단체” (“Compagnie des Arts Français”)를 만든 예술가이자 건축가이다.

루이 수는 (Louis Süe)는 아주 잘생긴 엘리트로 보르도의 큰 와이너리를 소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위해 파리로 와서 프랑스의 최고 엔지니어들만이 가는 에꼴 드 폴리테크니시앙을 준비하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 Victor Laloux의 제자로 예술학교인 보자르에 입학하였다. 수는 이후에 건축가가 되어 파리에 에이전시를 열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와 앙드레 마흐(Andre Mare)가 제작한 일련의 가구 시리즈들은 아주 짧은 시기 동안 적은 수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것중에 하나인데,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아 균형잡히고 아름답다. 그들의 창작물을 보자.

 

 

 

오른쪽 아래는 무엇인지 짐작이 안 갈 수도 있겠다.  “꽃 (Fleur)”라고 불리는 이것은 금속과 유리알을 길게 늘어뜨려 놓음으로서 전구를 가리고 유리 알이 빛을 은은하게 공간에 반사하던 벽걸이 조명이다. 이 듀오의 걸작들은 이후에도 건축, 실내장식을 막론하고 계속해서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재정적인 위기로 인해 프랑스 예술단체는 Gaston Monteux에게 팔리고 만다.

이 찻잔은 그 색감과 장식이 흠 잡을 때 없이 탁월하고, 균형미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아주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여담이지만, 루이 수는 그 잘생긴 외모와 능력으로 당시 희대의 멋진 남자였다. 특히 근대 무용의 창시자인 미국 댄서 이사도라 던컨 (Isadora Duncan)은 그의 아주 친한 친구이자 정부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르데코 시기에 당시 파리 예술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사도라와 관련된 영화 “La danseuse”가 있으니 관심있다면 추천한다.

 
가구와 실내 장식

세계 1차 대전의 대혼란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위생과 기능성이 겉치레와 호화보다 우선순위가 된다.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장식은 소박하다 할 정도로 간소화되며, 조명은 단순화되고 가구는 가장 심플한 표현이라 할 정도로 그 위치가 하향조정된다.

그러나 이 미니멀리스트적 성향은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이 대립이 마치 한 유행인양 치부하게 된다.

가구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1925년 현대 장식미술 박람회만 봐도 이 반목과 대립을 잘 표현하고 있다. Louis Süe, André Mare, Henri Rapin, André Groult, Jacques Emile Ruhlmann 로 대변되는 ” 색을 활용한 장식주의자”들이 프랑스 전통예술과 기술을 사용한 고급 가구들을 선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 Robert Mallet-Stevens, Francis Jourdain, Djo-Bourgeois 과 같은 ” 기술적 건축가” 아티스트가 공간과 관계가 깊고, 잘 어울리는 심플하고 세련된 가구들을 선보인 것 만 봐도 잘 알 수있다.

-“Paris 1919-1939″ 에서 발췌,  저자 Vincent Bouvet, Gérard Durozoi

 

 

 

 
“Ah, j’ai le même ! IKEA?”
“어, 나도 같은 거 있어. 이케아지?”

인정해야 할 순간이 있다. 프랑스에서 집안 인테리어를 신경써서 꾸미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집 안에 이케아 가구가 없는 집은 없다. 이케아가 취급하는 제품이 셀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집들이나 가벼운 맥주 한 잔으로 친구 집에 들르는 경우에 몇 번이고 나와 같은 가구 식기 세트, 침대 커버를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홍콩에서 거주 할 적에 이케아에 들러 몇 가지 살림살이를 사서 가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케아 매장에서 “이게 가방에 들어갈까?”하며 요리조리 살펴보는 것을 보고 은근 슬쩍 물어보니 홍콩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장소 중의 하나란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가기 전 이야기다.

비난할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케아의 모토가 “아름다운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 이니 주머니 사정이 녹록치 않은 싱글이나 학생들에게 북유럽 감성이 충만한 인테리어를 꾸미기엔 아주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슬슬 나만의 것, 나만의 공간을 자신의 감성대로 꾸미는 유럽인들이게 이케아는 오우-케이 (O-OKAY) 정도의 평준화된 디자인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 마켓, 프랑스 어로는 브호껑뜨 (Brocante)를 주말마다 다니며 그들의 감성을 흔드는 물건들을 찾고, 그들의 공간을 완성시켜 나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힙해진 브랜드 Sezane을 창립자 Morgane Sezalory는 빈티지 옷을 리폼하여 eBay에 판매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집을 보면, 그녀만의 감각각과 빈티지 아이템으로 집안을 꾸민 것을 볼 수 있다.

Sézane의 웹사이트

아무 것도 아닌 청동 촛대, 낡았지만 세탁소에 맡겨서 새 삶을 찾은 러그, 여러 손을 타서 반질반질해진 나무 의자, 벽난로 위에 있던 오래된 거울. 오래된 것들은 시간을 타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좋은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하얀 새 뉴발란스 운동화보다 조금은 낡고 색이 바랜 운동화가 은근 어떤 룩에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아띠끄 파리 차근차근 소개하는 조금 색다른 물건들로 당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 버려진 것들이거나 해가 지나면서 바랜 것들에서는 어쩐지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저는 그 아름다움을 보고 반하는 분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요.  “
 

NOT FOR EYE BUT FOR MY TABLE,

바라보는 도자기 말고,  닳도록 만지고 싶은 도자기

중국 도자기에 비견할 정도의 도기를 생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고령토가 1768년 프랑스 리모주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면서부터 프랑스 중부 도시 리모주 (Limoges)는 도자기 산업의 주요 생산지가 되었습니다 . 예를 들어, 에르메스 (Hermès)가 만드는 모든 도자기 테이블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리모주 주변 지역 농트롱(Nontron) 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베르나르도 (Bernardaud)나 데솔리에(Dessousliers), 하비랜드 (Haviland)와 같은 프랑스 럭셔리 도자기는 지금도 이 지방에서 생산되고 있지요.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리모주 도자기라고 하면 그 이름만 믿고 눈 가리고도 산다고 할 정도 입니다.

Hermès

소량으로 생산하는 세브르나 생산이 끊긴 파리 도자기에 수집가들이 열광한다면, 리모주 도자기는 매 해 아름답고 품질이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가정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데솔리에(Dessousliers)는 아필코라는 심플하고 세련된 비스트로용 잔으로 , 베르나르도는 미슐랭 레스토랑 쉐프만을 위한 새롭고 독특한 컬렉션들을 만들어내면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데솔리에 아필코 잔

추 후에 이 아필코 비스트로 잔을 업데이트하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베르나르도 쉐프 – 라이트 우드 컬렉션

베르나르도 쉐프 – Canisse 컬렉션

“리모주 도자기를 알아보는 건 쉬워요.
밝은 조명에 비추어 보면 불투명한 빛이 얇은 도자기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 같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아주 얇은 도자기에 투명 조각술 (lithophanie)이라고 불리는 양각기법으로 그림을 새겨넣은 돔 모양의 테이블 조명 장식이 입니다. 안쪽에 작은 초를 켜면 은은한 조명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찻 잔이나 접시도 들어서 조명에 비추어보면 실제로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할 정도로 리모주 도자기는 얇고 견고합니다.

Lithophanie – La Danse

 

그럼 이제 조금 심도있게 빈티지 컬렉션 이야기를 해볼까요. 리모주 도자기의 명성이 대단한만큼 과거프랑스 가정에서도 리모쥬 도자기는 크리스마스나 중요한 손님을 초대하는 식사 자리에서만 꺼내놓곤 하던 도자기 입니다. 음식을 차려놓은 테이블로 많이 쓰이는 부페(Buffet)란 용어는 접시나 크리스탈 등을 담아놓던 찬장을 이르기는 말이기도 한데 손님이 오면 바로 이 부페에서 접시를 꺼내 테이블을 장식했지요.

리모주 야생화라고 소개한 도자기 세트는 아마 부페에서 쿨쿨 잠을 자던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아주 상태가 좋은 데다 테두리 금장식이 바란 곳 하나 없이 깨끗하니 말입니다. 설탕을 담는 그릇, 밀크 팟 그리고 크기가 큰 주전자와 잔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세트는 과거 부인들이 모여 오후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 주로 사용되던 서비스입니다.

리모주 야생화 도자기 in 세브르 도자기 박물관

유려하게 흐르는 곡선을 따라 흐르는 금색 테두리 장식과 흐드러지게 핀 들꽃 장식이 아름다워 아메리카노를 은은하게 타서 마시는 분이나 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주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아주 심플한 하얀 도자기에 설탕 그릇 정도에만 포인트를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찬장에 두고 보기만 하기보다는 자꾸 꺼내서 요리조리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도자기입니다.

 

오 – 마이- 커피.

이건 사실이 아닐거야. 방금 날다시피 하여, 계단을 세칸을 한꺼번에 뛰다시피하여 5층 (한국으로 하면 6층)에서 내려왔겄만, – 빡 – 이마를 손바닥으로 딱 치며 외쳤다.
– Merde, mon café ! (Shit, my coffee! )

프랑스의 건물은 백년 정도 된 건물들이 많아서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들이 다수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6층 건물에 살고 있는 경우라면 집을 나설 때 잊은게 없는지 열 두번 정도는 살피는 게 맞다. 아니면 숨가쁘게 다시 6층을 올라 물건을 가지러 가야 하니까.
오늘은 교통카드를 두고 왔다. 다시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Café doit être noir comme l’enfer, fort comme la mort et doux comme l’amour.”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하고, 죽음처럼 강해야하며 사랑처럼 부드러워야한다.”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씩씩거리지만 금새 어디가서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16구에 있는 Holiday Café를 갈까? 이 카페는 유명한 여행 잡지 Holiday가 만든 곳으로 커피숍이라기보다는 아주 미니멀하고 클레식한 컨셉으로 만든 비스트로로 분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 분위기와 Café gourmand (카페 구흐멍-  에스프레소가 서너가지의 작은 디저트와 함께 나오는 것) 때문에 매일 발목 잡히는 곳 중 하나다.

(더 보기…)

 
‘도자기, 그 깊이.”
아띠끄의 첫번째 컬렉션의 주제는 ‘도자기, 그 깊이.” 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도자 백자 청자가 있듯 프랑스 도자도 그 만의 미와 깊이가 있습니다. 조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1498년 비단길이 열리고 바스코 다 가마가 동방에서 유럽으로 중국 도자기를 들여오게 되면서 그 존재가 서방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랜 세기 동안 도자기의 신비로운 재료에 대해 연구하던 유럽인들은 16세기 후반 고령토를 발견하게 되면서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마이센 (Meissen), 프랑스의 리모쥬(Limoges) 와 세브르 (Sèvres)등이 대표적이지요.

프랑스 세브르(Sèvres) 도자기는 왕실과 귀족의 테이블을 수 놓던 세심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입니다. 지금도 파리의 세브르 도자기 박물관에 가면 그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감상할 수 있고, 박물관 뒷 편으로는 아뜰리에가 있으니 조용한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입니다. 전 세계 현대 작가들에게 기거할 수 있는 공간과 아뜰리에를 제공하며 협업하여 이미지 쇄신은 물론 현대 도자기 미술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기거하는 엘리제 궁의 모든 식기는 세브르의 도자기이며,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정상회담을 하거나, 정상들을  프랑스 엘리제 궁에서 초대하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이 도자기로 요리를 접대한다고 하니 그 명성을 알만하지요. 또한 식사를 한 그 접시를 각 손님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엘리제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세브르의 모든 도자기중 가장 비싼 것은  마담 퐁피두에 의해 주문된 바로 저 포푸리 함입니다. 포푸리 (Pot pourri) 란,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번역하면 ‘썩은 단지’인데, 꽃이나 식물등 바싹 말려 단지에 넣어 놓고 사용하던 천연 방향제입니다.

세브르 도자기가 18-19세기 폴리크롬, 즉 여러가지 색을 사용하여 도자기를 장식하는 기법을 특허로 지정하여 시장을 독점하자 이에 반발하여 여러 생산 업체가 생겨났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Porcelaine de Paris, 파리 도자기 입니다.

파리 도자기는 1772년에 장 바티스트 로크르에 의해 만들어진 도자기 생산 업체 입니다. 31살에 독일인 부인을 만나 독일 라이프찌히에 정착하며 돈을 모은 로크르는 1772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 도자기 생산 공장을 만들게됩니다. 이 후 부인의 도움을 받아 독일인 도자기 장인 Laurentius RUSSINGER을 수장으로 영입하면서 파리 도자기는 유명세를 타게 되지요. 안타깝게도 파리 도자기는 세브르처럼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지만 그 귀족적인 우아함이 지나치지 않아, 삶에 오래도록 두고 감상하고픈 도자기들이 많습니다. 백 년이란 시간을 겪었으니 대부분이 좋은 상태이기 어려우나 골드와 벨벳 그린의 파리 도자기는 훌륭한 상태입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그 우아함 덕분인지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파리 도자기 골드 & 아이보리

파리 도자기 골드 & 벨벳 그린

파리 도자기 골드 & 벨벳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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